“한 타에 수 백만, 수 천만 원이 걸려있는 골프경기에서 저는 중요한 퍼팅을 하기 전에 항상 홀덤의 ‘UTG포지션’ 을 생각합니다.”
안녕하세요?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은메달리스트 프로골퍼 공태현(26)입니다. 멘탈스포츠하면 빼놓을 수 없는 스포츠가 바로 골프죠. 전 골프를 하면서 지금까지는 성적에 너무 연연한 플레이를 했습니다. 과거 국가대표시절부터 프로로 데뷔한 2017년도까지는 말이죠. 이런 저의 멘탈을 바꿔준 것은 유능한 멘탈코치가 아닌 홀덤이었습니다.
about:blank제 주변 동료들한테 물어봤어요. “홀덤이 뭔지 알아?” 잘 모르는 사람과 “카지노! 도박!” 이라는 이야기를 먼저 꺼내는 선수로 반응이 나눠졌습니다. 물론 3년 전 저도 후자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었죠.
2016년 겨울, 필리핀으로 전지훈련을 갔을 때였습니다. 당시 저녁에는 할 일이 없어 형들과 카지노에 구경을 갔습니다. 화려하기는 했지만 제 마음에 들지는 않았죠. 그렇게 구경을 하다 보니 가장 테이블이 많은 게임이 ‘텍사스홀덤’이었습니다. 기존에 포커의 룰을 알았기 때문에 구경하면서 시간보내기에는 이만한 게 없더라고요.
카지노를 다시 한 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고, 저도 운동선수인지라 지는 걸 너무 싫어해서 그랬을까요? 홀덤이라는 걸 검색해 알아봤어요. 기존의 동네에서 하는 세븐포커나 훌라같은 트럼프 카드 게임과는 다른 세계가 있더라고요. 잘하기 위해서 해야 하는 플레이, 리스크를 줄이는 플레이, 과감한 플레이 등등 자신이 처해진 상황과 주어진 환경에 따라 전략이 바뀌는 골프와 너무 흡사한 것이었어요. 단순히 도박으로만 알았었지, 전략을 가진다? 전혀 상상할 수 없었는데, 계속해서 알아보고 공부해보니 홀덤은 긴 시간 운영을 통해서 나를 잘 가꾸어 나가야 하는 전략게임이었어요.
머리가 띵 했어요. ‘홀덤에 배울 것이 있다. 왜 골프는 이렇게 하려고 하지 않았나?’
골프는 무조건 비거리를 멀리 보내서 버디를 많이 하는 경기가 아니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는 세이브를 잘 하고,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잘 지키고, 결정적인 순간에는 누구보다 과감한 플레이를 할 줄 알아야 해요. 그것을 저는 놓치고 있었죠. 과거에 잘했던 성적들, 커리어들만을 생각해서 결과만을 보고 쫓아 왔더라고요. 그래서 작은 결과에 좌절을 하게 되고, 과정은 무시하게 되고, 그러다보니 기본기에 충실하지 못해 슬럼프가 찾아왔던 것이었죠.
홀덤을 알고 난 후 슬럼프가 온 이유를 찾을 수 있었고, 어떻게 해결해나가야 할지 방향이 잡힌 것이었습니다. UTG포지션(Under the Gun·빅블라인드 다음 위치, 즉 프리플롭 단계에서 가장 처음으로 액션을 하는 위치)에 가까울수록 참을 줄 알아야 하고, 좋은 핸드를 기다리고, 승부는 과감하게 하는 홀덤. 좋은 포지션에서는 여러 핸드로 카운터를 할 줄 알아야 하고, 상대방의 플레이에 맞춰서 운영을 하는 홀덤. 그냥 카드만 보고 카드만 맞추는 것이 아니고, 높은 확률에 승부를 하는 홀덤.
1번 홀부터 18번 홀까지 운영하면서 초반에는 무리하지 않고, 기회가 오면 잡고, 기회를 억지로 만들려고 하지 말고, 컨디션이 좋던 나쁘던, 지금 주어진 내 상황에 맞게 플레이를 해야 합니다. 그러다 성적이 안 좋거나 애매하거나 순위가 중요한 상황일 때는 공격적으로 나가야 하죠. 반대로 선두일 때는 무리한 플레이를 하지 말고, 기회가 왔을 때만 낚아채는 노련함이 우승을 가져오고요. 그리고 경기가 끝나고 이 안에서 부족한 점을 연습하는 게 운동선수의 모습이라고 일깨워 줬습니다.
홀덤이라는 스포츠는 골프와 정말 많이 닮아 있었습니다. 골프도 이미지만 보면 부자들이 하는 스포츠라는 인식이 많이 잡혀 있잖아요? 홀덤도 도박이라는 이미지가 있고….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그렇지 않은 부분이 많이 차지하고 있는데 말이죠. 그리고 깊게 보면 스포츠요소가 무궁무진하게 많이 있습니다. 이렇게 교훈을 주고 지금 1부투어로 복귀시켜준 ‘홀덤선생님(?)’에게 감사를 표하며 지금은 주변 골프선수들에게 홀덤이 가지고 있는 마인드스포츠적인 요소를 많이 알려 같이 즐기고 있습니다. 홀덤을 스포츠화 시키는 게 아니라 홀덤은 이미 현재도 엄청난 스포츠입니다. 저를 바꾸고 가꿔준 홀덤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앞으로는 골프에서 더욱 빛날 저 공태현 프로를 지켜봐 주세요.
2014 인천 아시안게임 은메달리스트 프로골퍼 공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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