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카의 전설, 20세기 후반 가장 유명한 카지노 플레이어 중 한 명인 카시와기 아키오(Kashiwagi Akio)는 살아생전 그의 높은 배팅률과 마지막 죽음까지 미스터리한 인물로 남아있다.
카시와기는 9명의 형제자매가 있는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 부유하지 않은 가정에서 자라오며 고등학교 시절 중퇴 후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후지산 방문객들의 허드렛일을 하며 부동산 공부를 하고 1960년대 초 부동산 개발 업자에 뛰어들기 시작하며 그의 인생은 변화하기 시작한다.
카시와기가 초창기 투자했던 지역이 개발되며 수익률은 100만배가 증가하며 1969년 부동산 회사와 대출 회사를 설립, 그의 사치스러운 생활과 조직 범죄와 연관된 그의 바카라 인생은 시작되었다.
본격적인 게임은 1980년대부터 시작되었는데 처음엔 재미로 시작했던 바카라 배팅은 점점 배팅 수위가 높아지며 한 번 배팅에 2억 이상을 배팅할 정도로 간땡이가 커지며 정점을 찍은 사건은 다이다몬드 비치 카지노에서 약 2,200만 달러를 따며 도박계에서 유명해졌으며 80시간 동안 플레이하면서 최대 100,000달러까지 배팅을 했었다고 전해진다.
카시와가가 카지노계의 유명인사가 되며 그 당시 여러 카지노를 소유하고 있던 사업가인 도널드 트럼프(전 미국 대통령)가 그의 인기를 이용해 돈을 벌기 위해서 카시와기를 본인 소유의 트럼프 플라자(Trump Plaza) 카지노 호텔에 초대함과 동시에 여러 기자들도 초청하여 그의 플레이하는 모습을 기사화 하기도 하였다.
트럼프는 카시와기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
카시와기는 첫 30분만에 100만 달러를 벌었으며 총 620만 달러를 챙겨 떠났고 남겨진 트럼프는 재정적인 어려움에 처하며 3개월 후 카시와기에게 다시 와달라는 말을 하고 재정비 시간을 갖게된다.
그 사이 트럼프는 수학자 제스 미르쿰에게 그를 이길 수 있는 자문을 구하며 방법을 찾았고 카시와기가 젊은 여성 딜러와 플레이 할 경우 그의 수익이 좋지 않은것을 파악해 지속적으로 젊은 여성 딜러만 붙인 결과, 트럼프의 소원대로 카시와기는 6일 동안 1,000만 달러를 잃고 떠났다.
여기서 또 하나의 변수는 카시와기가 잃은 돈 1,000만 달러는 모두 트럼프의 돈이었는데 그 중 6백만 달러만 갚은 후 재기하기 위해 유럽으로 떠나 바카라를 했지만 거기서도 1,540만 달러를 추가로 잃음으로서 그의 인생은 나락행 열차를 타고 달렸다.
엎친데 덮친격, 일본의 치솟던 자산가격은 결국 거품경제가 붕괴되며 카시와기 손에는 1억 3,100만 달러라는 거액의 빚만 남게 되었고 유럽과 미국 등 빚쟁이 신세가 되어 몰락하며 도망자 신세가 되고 만다.
카시와기가 몰락하기 전 여러대의 외제차들과 값비싼 다이아몬드를 가지고 있었고 요코야마 다이칸(Yokoyama Taikan)의 그림들을 포함한 희귀한 예술품들을 소유하고 있었으며 예술품들을 박물관에 가끔 빌려주기도 했다고 전해진다.
또한 그의 씀씀이를 잘 알 수 있는 계기는 카시와기 궁전으로 알려져 있는 집을 짓는데 3,800만 달러를 쓸 정도로 씀씀이가 컸다.
그치만 그의 겉모습은 사치와는 거리가 먼 차분한 스타일이었는데 보석이나 값비싼 명품들로 치장하지 않고 수수한 모습으로 카지노를 다녔다고 하며 6살 연상의 인기 세이샤와 결혼해 3명의 자녀를 두었다고 한다.
카시와기의 마지막 결말은 54세의 젊은 나이로 1992년 비참하게 끝이 나는데, 가족들이 외출한 사이 혼자 있던 자택 부엌에서 살해된 채 발견된다.
그가 가지고 있던 다이아몬드, 골동품, 현금 다발을 가져가지 않고 침입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으며 일본도와 비슷한 물체로 150여 차례 찔린 채 숨진 채 발견되었으며 누가 그를 살해했는지 아직까지 밝혀지지 않은 채 2007년 카시와기의 살인죄 공소시효가 만료됨으로서 그의 죽음은 아직까지 미스터리 사건으로 남아있다.
1980년 – 1990년대에 카지노 역사상 가장 높은 배팅을 기록한 인물이자 대담함과 용기로 오늘날까지 바카라 게임의 전설과 기억에 남는 인물 중 하나로 왜 전설이 되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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